이번 포스팅에서는 면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해보려고합니다.^^
면의 우리말은 국수이다. 국수는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탄생한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풍부한 양의 곡물을 생산할 수 있는 비옥한 환경탓에 이 지역사람들은 곡물을 이용해 국수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수는 실크로드를 통해 아시아에 전파되었고, 이후에 각 나라에 입맛에 맞게 각기 다른 조리법과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사랑받고 있는 국수는 국민 1인당 한해 소비량이 약 13kg에 달할 정도로 국수의 인기는 어마어마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양한 국수들은 어떠한 사연을 담고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차이나타운에 대표적인 음식인 짜장면, 짜장면에 대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짜장면 박물관(개향기 인천에서 탄생한 짜장면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건립된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핫한 인기를 자랑합니다. 짜장면이 처음 등장한건 중국 산동에서 인천항으로 건너온 화교들을 통해서였습니다. 인천에서 개항이 되면서 중국인 노동자들을 쿨리라고 불렀는데 중국인 노동자들이 값이 싸면서 손쉬운 음식을 찾다 보니까 산동 지방에서 먹던 음식이였습니다. 면을 삶아서 볶은 춘장을 비벼먹은게 바로 짜장면의 시초가 된것입니다. 삶은 국수에 첨면장이라는 중국식 된장과 채소를 비벼먹는 이 음식은 작장명(중국 북부의 가정요리, 삶은 국수에 첨면장,채소를 비벼 먹는 음식)이라 불리웠습니다. 저렴한 작장면은 지갑이 얇은 화교들과 인천을 드나드는 상인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당시 물기가 부족했던 작장면에 캐러맬이 첨가된 춘장이 개발되면서 오늘날의 짜장면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러한 짜장면이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대중들의 오랫동안 받은 사랑을 통해 시대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차이나타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얀 짜장면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또 뚝배기에 따뜻한 국물과 함께먹는 면을 육면이라고 부르는데, 고기를 가늘게 썰어 면을 삶아내던 전통적인 육면(고기를 국수같이 가늘게 썰어 메밀가루를 묻혀 면 대신 끓여 먹던 음식)과는 조금 다른 면이 흑미면인 육면도 있습니다. 흑미면은 흑미를 발효시켜서 나온 영양가가 높은 흑미의 물(안토시아닌 물)을 면에 다시 부어서 만드는 방식이다. 어렇게 오랜 관심과 사랑을 통해 면의 종류는 같은 종류라도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국수는 대표적으로 제조법에 따라 납면,압면,절면,소면,하분 등으로 나뉘는데, 납면(칼을 쓰지 않고 면발을 손으로 여러 번 늘려 가늘게 뽑는 국수)은 흔히 아는 수타면으로, 중국의 중화면과 일본의 라멘이 대표적입니다. 압면(반죽을 작은 통 사이에 넣고 눌려 뽑아내는 국수)은 메밀이나 쌀, 옥수수등을 이용한 국수에 많이 사용됩니다. 절면(반죽을 얇고 넓게 민 뒤 칼로 썰어서 만드는 국수)은 칼국수가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제조법에 따라 다른 면은 만드는 이에 손맛이 더해져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국수는 언제부터 우리의 밥상에 올랐을까요? 국수는 옛날에는 그렇게 먹지 않았었는데, 통일신라시대 무렵에 국수를 먹기 시작한걸로 나와있습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면을 먹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1100년대부터 우리가 면 요리를 먹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국수가 처음 기록된 고려도경을 보면 사진을 접대하는 음식 중 첫선에 꼽는것이 바로 국수였습니다. 그런데 밀은 수입해야 할 정도로 부족했기 때문에 큰 잔치때만 먹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밀가루는 귀한 가루라하여 진가루라 불릴 정도였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성례떄가 아니면 먹지못하는 귀한 음식이였고, 조선의 역사를 보면 임금이나 양반, 권력자와 부자의 점심상에 주로 국수가 올랐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이야 흔한 음식이 되버렸지만 이렇게 국수는 과거에 귀한 대접을 받는 잔치음식이였습니다.